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 동맹 (문단 편집) == 역사 == 1800년 6월 [[제2차 이탈리아 전쟁|나폴레옹의 2차 이탈리아 원정]]의 [[마렝고 전투]]와 뒤이은 라인 전역에서 오스트리아는 참패했다. 이에 따른 1801년 2월 뤼네빌 평화조약으로 [[라인강]] 서안이 [[자연국경]]으로 프랑스에 합병되었으며, 나폴레옹은 1803년 레겐스부르크에서 개최된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 대표 회의에 간섭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5개 영방국가를 선제후로 승격시켰다. 기존 4명의 선제후 중에 바이에른 공작과 작센 공작은 나폴레옹에 우호적이었고, 남은 2명은 합스부르크의 [[보헤미아 왕국|보헤미아 국왕]]과 [[프로이센 왕국]]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뿐이었다. 1804년 나폴레옹은 '프랑스인의 황제'로 즉위했으며, 이대로 가다간 신성 로마 황제 지위마저 프랑스에 뺏길 것을 우려한 [[프란츠 2세]]는 [[합스부르크 제국]]을 합쳐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했다. 이후 1805년에 영국이 [[아미앵 조약]]을 파기한 것을 시작으로 동맹국인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 등을 끌어들여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영국 상륙에 실패한 나폴레옹은 대신 오스트리아로 진격하여 11월 14일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오스트리아)|빈]]에 입성하고, 12월 2일에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를 기점으로 독일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은 확고해졌고, 나폴레옹은 자신을 따르는 선제후들과 함께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려 시도했다. 1806년 6월 프란츠 2세에게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위협했고, 7월 12일에 라인 동맹을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이에 프란츠 2세는 8월 6일에 신성 로마 제국을 해산했다. 이 무렵까진 라인 동맹은 오스트리아 제국을 제외한 독일 중·남부 회원국들로 구성되었으나, 프랑스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프로이센 왕국이 러시아 제국을 끌어들여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을 일으켰다. 10월 14일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참패하면서 25일에 나폴레옹은 베를린에 입성했고, 나폴레옹의 눈치를 보고 있던 북독일 지역의 영방국가들도 라인 동맹에 가입하기 시작한다. 이듬해 7월 [[틸지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프로이센의 [[엘베강]] 이서 북독일 영토가 대거 프랑스 제국으로 할양되었으며, 나폴레옹은 [[베스트팔렌 왕국]]을 세우고 획득한 영토는 대체로 프랑스 제국의 괴뢰국인 베스트팔렌 왕국과 베르크 대공국에 소속시켰다. 1810년 나폴레옹은 [[대륙 봉쇄령]]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불만을 품었고, 7월 9일에 괴뢰국 [[홀란트 왕국]]을 프랑스 제국으로 합병했다. 같은 달에 라인 동맹의 북해 연안 일대도 프랑스로 합병한다고 선언하여, 12월에 회원국인 올덴베르크 공국과 잘름 후국이 합병되고, 베스트팔렌 왕국과 베르크 대공국 영토의 일부도 프랑스로 할양되었다. 당초 나폴레옹은 틸지트 조약을 통해 올덴베르크 공국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 보장을 약속한 상황이었기에, 이에 격노한 러시아는 프랑스를 도발하기 시작했으며 나폴레옹은 전쟁을 준비했다. 결국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위해 라인 동맹에서 병력을 징발했다가 대참패를 당했고, 당연히 회원국에서 반발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듬해 1813년에도 다시 병력을 차출하여 크게 소모하면서, 프랑스의 병력·물자 수탈에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회원국들은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 프랑스에 선전포고하여 라인 동맹은 실질적으로 해체된다. 애당초 라인 동맹의 존속은 오로지 프랑스 제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기존 라인 동맹의 회원국을 포함한 [[독일어권]] 국가들이 [[독일 연방]]을 형성했다. 프랑스의 괴뢰국이었던 베스트팔렌 왕국과 베르크 대공국은 당연히 해체되고, 프랑크푸르트·뷔르츠부르크 대공국이 바이에른 왕국에 합병되었으며,[* 프랑크푸르트 대공을 겸하던 레겐스부르크 대주교는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 작위를 포기했고, 뷔르츠부르크 대공은 원래의 지위였던 [[토스카나 대공국|토스카나 대공]]으로 복귀했다.] 끝까지 나폴레옹에 협력하던 이젠부르크·라이엔 후국도 인접국에 합병되었다. 프랑스 제국에 해체된 나라들 중에 복구된 것은 하노버 선제후국·헤센 선제후국·올덴부르크 공국·[[브라운슈바이크 공국]]·헤센-홈부르크 방백국 등 5개국 뿐이었으며,[* 모두 강대국과 특수한 관계가 있는 나라들이다. 하노버는 애초에 [[영국]]과 동군연합이고, 브라운슈바이크 공가는 하노버 왕가와 같은 집안이다. 올덴부르크 공가는 덴마크 왕실의 분가로, 당시 러시아 황실과 스웨덴 왕실과 같은 집안이기도 하다. 헤센 가문은 러시아 황실과 인척 관계였다.] 라인 동맹에선 독립적 지위가 부정되었던 [[자유도시]] 중에는 [[뤼베크 제국도시|뤼베크]]·[[함부르크 제국도시|함부르크]]·[[브레멘 제국도시|브레멘]]·[[프랑크푸르트]] 4곳만 복구되었다. 그외 라인강 서안에 [[네덜란드]] 국왕이 동군연합으로 겸하는 [[룩셈부르크|룩셈부르크 대공국]]이 형성되었고, [[하노버 왕국|하노버 선제후국]]은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메클렌부르크슈베린·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올덴부르크 공국이 대공국으로 승격했다. 헤센 선제후국은 대공 지위를 인정받았으나 선제후 칭호를 유지했다.[* 헤센 가문의 종가인 헤센-카셀은 당초 나폴레옹에 협력하여 1803년에 선제후로 승격했으나, 라인 동맹에는 반대했다. 때문에 나폴레옹은 헤센-카셀 대신 방계 가문인 헤센-다름슈타트를 대공으로 승격시켰고 헤센-카셀은 해체해버렸다. 헤센-다름슈타트의 헤센 대공국은 빈 체제 이후에도 그 지위를 유지했고, 이에 헤센-카셀의 선제후는 헤센 지방의 고대 게르만 부족인 카티족에서 따온 '카텐 왕(König der Chatten)'으로 승격해달라고 청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공 지위만 공인받았다. 결국 헤센-다름슈타트의 헤센 대공국보다 우월함을 내세우기 위해 헤센-카셀은 종전대로 '헤센 선제후국'을 유지하면서 풀다 대공(Großherzog von Fulda)을 보조 칭호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해체된 6개국 외에 기존 라인 동맹에 가담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작위를 승격시킨 기존 회원국들의 기득권은 그대로 인정되었고, 작센 왕국이 프로이센 왕국에 강제로 영토를 할양한 것과 복구된 5개국의 영토가 반환된 것 정도의 예외만 있었다. 프랑스에서 반환된 영토는 원래의 제후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나눠가졌으며, 대신 '[[슈탄데스헤어]]'라는 신분을 창설하여 옛 제후들의 귀족 지위를 유지시키는 결정만 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